세계 경제 스태그플레이션, 오일쇼크와 물가 안정
1970년대 오일쇼크(석유파동)가 촉발한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악몽이 다시 어른거리고 있다.
1970년대 세계는 두 차례의 오일쇼크를 겪었다. 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한 1973년 아랍 국가들은 이스라엘을 돕는 나라를 대상으로 원유 수출을 중단했고, 이듬해 12월 유가는 전년 동기 대비 세 배 넘게 상승해 배럴당 11.5달러에 이르렀다. 1979년에는 이란혁명이 터지면서 원유 생산량이 급감했다. 1980년 4월 유가는 1년 전보다 두 배가량 뛰어올라 배럴당 39.5달러를 찍었다.
유가 상승세는 물가 전반으로 퍼지면서 1976년 초 5%를 밑돌았던 미국의 물가 상승률은 11%까지 치솟았고 경기 침체가 가속화될 수 있다는 우려에도 급속한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오일쇼크와 닮은꼴인 우크라이나 사태가 터지면서 기준금리 인상을 각국 중앙은행마다 고민이 깊어졌다는 분석이 나오며, 높은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기존 계획대로 기준금리를 높여야 하지만 섣부르게 나섰다가는 경기 침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2차 오일쇼크 당시 미국이 초고금리 정책을 펼쳤을 때도 단기적으로는 실업률이 높아지는 부작용을 겪었었다.
오미크론 대확산까지 겹친 한국이 물가상승과 불황이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 문턱에 이미 발을 들여놨다는 분석도 있다. 정부는 당장 내일 오일쇼크가 닥친다는 마음가짐으로 철저한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에너지 비상수급 및 소비저감 방안, 기업·서민 지원책은 물론이고 재정·통화정책을 전체적으로 점검하는 종합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경제학계에서는 1970년대식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물가상승을 동반한 경기침체) 재발 가능성을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주요국의 물가는 올 들어 천정부지로 치솟고, 성장은 정체되는 모습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국 중앙은행(Fed)의 공격적인 긴축이 맞물리면서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는 날로 커지고 있다.
이를 두고 경제학계에서는 미국을 필두로 세계 주요국이 향후 1~2년 안에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것이라는 주장과, 저성장·고물가 흐름이 예상보다 오래 이어지더라도 경기가 침체되는 상황까지는 오지 않을 것이란 의견이 맞서고 있다.
반면 세계 경제가 코로나와 전쟁 여파로 장기간 저성장의 늪에 빠질 수는 있지만, 성장률이 실제 2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1970년대식 스태그플레이션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낙관론도 적지 않다.
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조사국장은 “세계 경제의 원유 의존도 감소와 견고한 정책체제를 감안하면 1970년대의 극심했던 스태그플레이션이 재현될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 경제의 원유 의존도가 197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한 점을 그 근거로 들었는데, 실제 전체 에너지 사용량 중 원유 비중은 1970년대 말 약 50%에서 2020년 기준 30% 수준까지 하락했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도 최근 NYT 기고를 통해 “현재 경제 상황은 ‘오일쇼크’로 물가상승률이 두자릿수 뛰고 실업률이 급증했던 1970~80년대보다는 2008년 금융위기 직후 세계 경제가 경험한 단기적인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 현상과 비슷하다”면서 “1970년대와 달리 2022년에는 인플레이션이 고착화(entrenched)된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다만 낙관론자와 비관론자 모두 중앙은행이 물가 안정에 중점을 두고 기준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데 의견을 함께했다. 물가 상승을 억제하지 못해 가계와 기업의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높아지면 임금인상이 물가를 더 자극하는 ‘임금·물가의 악순환적 상승(wage-price spiral)’이 고착화되고, 이는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켜 경기 침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신현송 국장은 연착륙에 성공하려면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려 물가 상승률부터 낮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가계나 기업이 인플레이션을 의사결정에 반영하기 전에 인플레이션을 빠르게 이전의 낮은 수준으로 회복시켜야 한다”고 설명했다.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가 동시에 발생했던 50년 전 오일쇼크 때와 유사한 충격으로 올해 세계 경제는 1월 전망치의 절반 수준인 2.9% 성장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한국의 성장률 전망을 2.7%로 0.3%포인트 낮추고, 물가 전망은 4.8%로 2.7%포인트 높였다. 인플레이션, 디플레이션보다 다루기 힘든 스태그플레이션의 공포가 현실화하기 시작했다.
결국 글로벌 경제 허리케인의 충격을 최소화하고, 위기에서 먼저 탈출하려면 경제 복원력을 높이는 구조개혁에 속도를 내야 한다. 현 시점에서 특히 중요한 게 노사 간 협력과 신뢰의 회복이다. 과도한 임금 인상으로 인한 노사 갈등은 제품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소비와 일자리를 모두 위축시켜 노사 모두 지는 게임이 될 수밖에 없다.